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수의 테레사 (문단 편집) == [[가르멜 수도회]] 제2의 창립자 == 가르멜 수도회의 명칭은 [[구약성경]]의 예언자 [[엘리야]]가 [[바알]]을 섬기는 사제들과 공개 대결을 벌인 [[이스라엘]] 가르멜 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. [[가르멜 수도회]](수녀회 포함)는 본래 [[십자군 원정]] 당시에 [[예루살렘]]의 가르멜 산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[[수도자]]들이 모여서 [[엘리야]]를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것이며, 뚜렷한 창설자도 전해지지 않는다. 이처럼 가르멜 수도회는 유서깊은 [[수도회]]였으나, 테레사가 입회하던 당시에는 지나치게 개방되어 [[수도자]]로서의 생활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이완되어 있었고, 내부에서도 수녀들의 집안 배경, 신분 등으로 갈라지는 등 본분을 잃고서 타락한 모습들이 만연해 있었다.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, 이 시기는 [[면벌부]]로 대표되는 유럽 [[천주교]]의 기강적 해이와 이로 인한 [[개신교]] [[종교개혁]][* [[마르틴 루터]], [[장 칼뱅]] 등]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던 시절이었다. 이렇게 천주교가 개신교의 도전에 직면하던 시대에, 테레사는 천주교의 내부개혁과 쇄신을 추구하는 데 앞장섰다. 역시 [[스페인]] 출신으로 테레사보다 한두 세대 앞서 [[예수회]]를 설립하며 천주교 개혁에 앞장섰던 [[이냐시오 데 로욜라]]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셈. 테레사는 1560년대를 중심으로 가르멜 수녀원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장했고, 봉쇄수녀원의 도입을 비롯한 규율 강화를 추구했다. 그리하여 자신의 고향인 아빌라를 시작으로 [[스페인]] 전역에 각 10여개의 남녀 수도원을 창립하였다. 이 과정에서 기존 가르멜 수녀회 내에서도 보수파, 개혁파 사이의 논쟁을 겪었지만, 테레사는 이를 이겨내며 [[그레고리오 13세]] 당시 [[교황]]으로부터 자신이 설립한 '맨발의 가르멜 수녀회' 인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. 이 과정에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준 [[십자가의 요한]] 신부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. 이러한 활동과 함께 《완덕의 길》, 《영적 보고》 등과 같은 여러 [[신학/가톨릭|신학]] 저서를 쓰기도 했다. 그 덕분에 오늘날 [[천주교]]에서 예수의 테레사는 [[중세]] 시대의 [[힐데가르트 폰 빙엔]], [[시에나의 카타리나]] 등과 함께, 여성 [[수도자]]의 대모(大母)로서 존경받고 있다. 테레사 본인은 자신이 개혁자(Reformadora)로 불리길 원했으나 교회 공식문헌에서도 창립자(Fundadora)라고 불린다. 특히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에서 테레사는 단순한 개혁자를 넘어 '제2의 창립자'로 확고한 존경을 받는다. 그 후로 테레사에 의해 개혁된 남녀 맨발의 가르멜 수도자들이 분리되어 나왔는데, 이런 점을 고려하면,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 입장에서는 테레사가 창립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. 이후 맨발의 가르멜 수녀회는 19세기 말 [[프랑스]]의 [[리지외의 테레사]][* 통칭 소화(小花) 테레사.], 20세기 [[나치 독일]]의 학살로 순교한 [[에디트 슈타인]] 등을 배출한 명망높은 수녀회로 활약한다. 한국에는 [[서울특별시]], [[인천광역시]], [[경상남도]] [[창원시]], [[전라남도]] [[나주시]], [[경상북도]] [[성주군]]에 남자 가르멜수도원이 있고, [[서울특별시]], [[대전광역시]], [[대구광역시]], [[경기도]] [[광주시]][* [[천진암 대성당]] 부근], [[충청북도]] [[충주시]], [[경상남도 고성군]]과 [[밀양시]], 경상북도 [[상주시]]에 가르멜 봉쇄수녀원이 있다. 또한 봉쇄수녀원이 아닌 [[http://www.carmis.org|전교 가르멜수녀회]]도 있다. [youtube(qmPNyrJTLhs)] >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>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>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>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>[[야훼|하느님]]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>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>네 소원이 무어뇨 네 두려움은 무엇이뇨 >네 찾는 평화는 주님께만 있으리 >주님 안에 숨은 영혼이 무얼 더 원하리 >오 사랑하고 사랑하여 주님께 모든 사랑 드리리 >주님만을 바라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차지할 것이니 >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>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가 쓴 시를 가사로 하여 만든 [[성가]]. ([[http://www.solph.or.kr|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]]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GqfMa_U7ucU|김충희 호세아 수녀]] 작곡) 영상에서 노래하는 이들은 [[가톨릭대학교/성신교정]] 신학생들이다. 성녀가 죽은 뒤에 성녀의 [[성무일도]]에서 발견되었다는 시이다. 원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. >Nada te turbe >아무것도 너를 흔들지 못하리라 >Nada te espante >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않으리라 >Todo se pasa >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>Dios no se muda >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니 >la paciencia >인내가 >todo lo alcanza >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 >quien a Dios tiene >하느님을 소유하는 이는 >nada le falta >아무런 부족함 없고 >sólo Dios basta >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[* 원문과 번역 출처: [[천주교 수원교구]] 방효익 바오로 신부, 《십자가의 요한 입문》, 225쪽] 이 시는 성녀가 직접 쓴 시인지 신뢰성이 의심 받고는 있지만, 그러한 논란과는 별개로 [[한국 가톨릭]]에서 성가를 통해 사랑받는 아름다운 시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